2008년 6월 13일 금요일

한국, 기특하거나 혹은 배은망덕하거나. - 미국인은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나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에 비가 너무 많이 온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이제는 가을 날씨가 되어가나 봅니다.

지금까지의 편지에서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떠받치고 있는 일반 시민들의 국가관, 미국 문화의 군국주의화, 그리고 미국민의 세계관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오늘은 좀 더 구체적으로 미국 시민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한국의 무기 구입부터 대(對)북한 관계, 구조조정 정책에 이르기까지 개입해온 제국으로서 미국의 의지와 선호는 한국인의 삶에 광범한 영향을 끼칩니다. 한국인으로 살면서 좋든 싫든 미국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무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야지요.

그렇지만 반대로 미국인들은 한국과 한국인들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제국의 시민들은 한국인들의 생활방식과 소망과 문화적 업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간단히 말씀드려서, 일반 미국 시민은 한국에 대해 거의 아는 것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이 알고 싶어 하고, 관심을 두고, 같이 나누고 보살피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한쪽이 상대에 대해 아는 것도 아무것도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면 그 관계는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짝사랑에 빠진 사람만큼 딱한 것이 또 있을까요?

대부분 미국인들은 자기네 나라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란 색안경을 통해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을 보며 우선 그 나라가 미국의 이익에 중요한 관련이 있는지 여부를 따집니다.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생각한다면 제일 먼저 한국이 미국의 적인지, 친구인지를 결정합니다. 즉 한국이 미국이 도와주고 구원해준 것을 감사히 여기고 있는 우방국인가, 아니면 미국에 대한 증오와 질투로 가득 차있는 반미국가인가를 알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미국인들의 마음에는 그 두 가지 사이에 있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너, 반미? 친미?"... 유치한 이분법에 갇힌 미국인

예를 들어 '자유공화국(Free Republic)'이란 보수계 시민단체 블로그에 실린 글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남한 사람들은 미국을 비난하고 노코(북한 사람들)들과 합작하고 있는데도 우리가 보호해줘야 된단 말인가? 남한 젊은 세대들은 역사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미국이 고마운 줄을 모르고 미군이 한국을 떠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그 바로 아래에는 "남한에는 소수지만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미국을 증오하는 좌파집단이 있다, 이들이 노코에게서 지원을 받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이와 함께 "나는 한국인 친구도 많고 그들과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대부분 소코(남한사람)들은 대단히 친민주주의적이고 친자본주의적이며 친미주의적이다"라는 식의 글도 흔히 보입니다.

독자 여러분, 이제 감이 잡히십니까? 미국인들에게 한국인들은 선량하든지 사악하든지 둘 중 하나며, 미국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기특한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고마움을 모르는 뻔뻔한 국민들이고, '반미'가 아니면 '친미'입니다. 한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일반 미국 시민이라면 그 이해나 관심의 깊이가 이런 유치한 양자택일의 사고방식을 넘어서지 않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대중매체가 늘 그렇듯 "친미" 또는 "반미"라는 딱지를 붙여 한국에서 일어나는 논의나 사건이나 인물을 소개할 때, 일반인들은 그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며 복잡한 국제관계 현실을 그저 말초 감정이나 자극하는 단순한 이야깃거리로 포장해놓은 뉴스꼭지들을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합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한국인들은 '반미'라는 개념을 주로 미국 정부의 정책을 반대한다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많은 미국인들은 '반미'를 아주 다르게 해석하여 "자유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증오하며, 미국 정부를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미국인 개개인을 혐오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미국 정부와 국민을 지나치게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가와 동일시하는 것이 미국인으로서 정체감과 구별되지 않도록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기차게 가르치는 것도 한 원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걸핏하면 텔레비전에 나와서는 "그들은 우리의 자유를 증오한다"면서, 테러리스트들은 미국 사람 개개인을 원수로 여긴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미국인 선생에게 깍듯한 반미한국인, 월드컵 응원에 긴장한 미국인

오래전에 제가 한국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었을 때의 일화입니다. 당시 거의 매주 데모가 있었는데, 학생들은 벽돌을 깨서 전경들에게 던지고 전경들은 학생들을 향해 최루탄을 쏘는 상당히 격렬한 데모였습니다. 때때로 학생들은 미국 대통령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태우기도 하고 길바닥에 성조기를 그려 자동차가 그 위로 지나가게 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집으로 가다가 한창 데모중인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아는 학생 몇 명도 거기 끼어서 돌을 열심히 던지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저를 보고는 돌아서서 꾸벅 절을 하면서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했고 저도 "예, 조심들 하세요"하고 인사했습니다. 그러고는 학생들은 바로 돌 던지기로 돌아갔습니다. 미국 학생들에게 이 일화를 들려주면 매우 놀랍니다. 반미주의자도 미국인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을 상대할 때는 이들이 미국에 대한 어떤 비판이든 개인적인 비판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같은 논리로, 미국인들이 다른 나라를 비판할 때는 그 나라 국민들도 같이 싸잡아서 비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미국인 친구 중에 서울의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사람이 있는데, 그는 월드컵 기간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와 열광적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국가대표 팀을 응원했을 때 진심으로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타국인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을 내포하고 있는 미국식 공격적 민족주의에 익숙했기에 한국인들이 길거리 축제에서 발산하는 긍정적인 민족주의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민족적 자부심과 기쁨을 한껏 드러냈을 때 그 사람은 외국인인 자신에게 적대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무서웠던 것입니다.

"미국인처럼 돼 가는 기특한 동아시아인들"

그렇다면 평균적인 미국 시민들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 떼 지어 나오셔서 성조기를 흔들며 친미 데모를 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이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나올까요?

앞서 인용한 블로그에서는 2003년 3·1절에 열린 예의 친미 데모를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를 실었습니다. "반핵, 반김정일, 자유통일, 그리고 미군 철수 반대"를 내세우며 "약 100만명"이나 모일 것이라고 주최 측에서 밝혔던 이 데모에서는 부시 정권의 대북 정책을 전폭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부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이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 2003년 삼일절에 열린 '반핵반김 자유통일 3.1절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대형 성조기, 태극기, 유엔기를 펼쳐드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3.1사진공동취재단

이 기사에 달렸던 85개의 댓글 중 다수 의견을 대표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동아시아인들이 기특하게도 미국인처럼 되어가는군! (East Asia eagles up.)"
"한국에서 반미 데모가 급속히 사라져 가는가 보다. (암, 그래야지!) 친미적인 사람들은 항상 있었겠지만 이제야 시간을 내고 용기를 내서 공산주의자들과 패배주의자들 같은 나쁜 새끼들(scumbags)과 맞서 싸우려고 나왔나보다. 만세!"
"머저리 같은 지도자 때문에 굶어죽는 사람들 보면 북한을 과소평가하기 쉽지만 방심하면 절대로 안 된다! 언제 쳐들어올지 몰라!"
"잘하고 있는 거야. 내가 마음이 다 훈훈해진다."
"이 기사 좋은데. 위로 올려라."
"좀 무서운데. 저 사람들 위험하지 않을까? 하긴 북한에서 미사일 쏘면 서울에 바로 떨어지는데 길에 있든 집에 있든 위험하기야 마찬가지지."

위의 댓글에서 한국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미국을 지지하는 데 대해 칭찬해주는 것뿐이고 미국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싸잡아 "나쁜 새끼들"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조선일보>나 친미데모에 참여해 성조기를 흔들어 주신 분들이나 제국의 시민들에게 한국을 좋아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대신에 적어도 일부 미국인들에게는 한국인들이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제반 정책과 미국 군대를 더욱 환영하게 되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켜, 뭐든 미국 정부 마음대로 밀어붙여도 된다는 오만한 생각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을 뿐입니다.

저로서는 좀 두렵기까지 한 것은 위 블로그에서 인용한 보수적인 미국 사람들은 대부분의 미국인보다 한국에 대해 상대적으로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으시려면 녹차 가지고는 안 되고, 아마 소주를 한 잔 들이키셔야 할지도 모릅니다.)

한국은 쿠바 옆, 미국은 싸움 말리러 한국전 참전?... 효순·미선 아는 이 없어

지난주에 제가 가르치는 국제정치학 개론과 미국정치학 개론, 그리고 미국의 대외정책 강의를 듣는 학생 전원에게 한국에 대한 간단한 설문지를 돌렸습니다.

이 설문조사를 실시한 계기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얼마 전 한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했는데, 학생 하나가 "미국 사람들은 효순양과 미선양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저는 미안하지만 미국 사람 중엔 그 사건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따라서 어떻게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하나는 지난번 편지를 쓰면서 미국인들이 세계 지리나 다른 나라에 관한 일반 상식이 많이 뒤떨어진다는 말씀을 드렸기에 우리 학교 학생들은 어떤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 저를 강연에 초대해주신 고등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입니다.
ⓒ 데니스 하트
한국관


▲ 고등학생들과 필자.
ⓒ 데니스 하트
한국관

제가 실시한 한국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는 생각보다도 더 비참했습니다. 거둬진 설문지는 총 70부였는데 효순양과 미선양 사건에 대해(희생자들의 이름은 물론 사건 자체에 대해) 아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카츠라-태프트 밀약(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하고 일본은 미국이 지배하던 필리핀을 침략하지 않기로 1905년 미일이 맺은 밀약)에 대해서도 단 한 학생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설문지에는 백지 세계지도가 들어있었는데 거기에 한국을 비롯한 몇 개국을 표시하게 했습니다. 한국을 정확하게 표시한 학생은 19%에 불과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에다 한국이라고 써놓은 것은 약과이고 21%는 필리핀, 태국, 베트남, 버마 등 동남아시아 어딘가에 한국이라는 표시를 했습니다. 심지어는 그리스나 쿠바, 카자흐스탄, 이란 같은 나라를 한국이라고 써놓은 학생도 있었습니다.


▲ .
ⓒ 데니스 하트
한국


▲ "K"라고 한국을 엉뚱한 곳에 표시해 놓은 지도. 하나는 쿠바 근처에, 다른 하나는 그리스 근처에 표시되어 있습니다.(I는 이라크, B는 브라질, S는 수단, N은 이란).
ⓒ 데니스 하트
한국

한국과 북한의 국가수반 이름을 물어본 질문에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을 댄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21%는 김정일 위원장의 이름을 (비록 철자는 엉망이었지만) 비슷하게나마 알고 있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이름을 아는 학생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것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코미디, 영화 등에서 자주 김정일 위원장이 포악한 정신병자나 독재자로 등장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일부 학생은 이름 대신 "광인"이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에 대한 질문에서는 21%만이 1950년대에 일어났다고 바르게 대답했습니다. 61%는 짐작도 못했고 나머지는 1960년대, 1970년대라고 하는가 하면, 심지어 1980년대까지도 나왔습니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질문에도 60%가 전혀 모른다고 답했고 27%는 북한이 쳐들어와서 남한을 도와주러 갔다든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갔다는 등의 비슷하게 맞는 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남한과 북한이 서로 싸우는데 말려주러 갔다든지, 북한을 편들어 주기 위해서 갔다든지 하는 엉뚱한 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을 군사대국으로 착각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어서 영국, 일본, 독일, 한국, 북한 5개 국가 중 군사비 지출은 북한이 제일 적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맞춘 학생은 7%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인들의 업적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해보라는 질문에는 거의 모든 학생이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대답했습니다.


▲ 설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학생들.
ⓒ 데니스
한국관

납작 엎드려도 미국은 쳐다보지 않습니다

첫 번째 드린 편지에서, 대다수 미국인은 누구보다 축복받았고 누구보다 자유로우며 누구보다 많은 권리를 누린다고 믿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 분들을 포함하여 미국 밖의 모든 세계인들은 미국인보다 열등하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제국은 원래부터 평등한 국제관계를 가정하지 않습니다. 제국주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물론 미국에 종속된 주변국가에 불과합니다. 유럽, 캐나다, 호주 등 몇몇 이른바 '선진국'을 제외한 미국 밖의 모든 주변 국가들은 '제3세계'라는 개념 아래 뭉뚱그려져 막연하게만 이해됩니다. 원래 제3세계 개념을 창시한 분들의 의도와 달리 미국에서 '제3세계'란 말은 우리 학생들 말대로 "가난하고, 인구밀도가 높고, 질병이 넘쳐나고, 무식하고 열등한 사람들이 독재자 아래에서 신음하는 곳"이란 의미로 변질되었습니다. 그 주변국가 가운데 일부는 제국의 질서에 순응하는 친미국가, 나머지는 위험한 반미국가라고 인식하는 것이 평균 미국인의 의식의 깊이입니다.

그렇다면 제국의 주변국에 사는 한국인들에겐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요? 제게 한국 학생들이 한 질문입니다. 저는 외국인이니 조심스럽습니다만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대통령 선거가 곧 다가오니 미국 정부에 한국을 동등하게 대우할 것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는 것이 한 가지 중요한 선택이 아닐까 합니다. 북한은 줄기차게 미국을 향해 동등한 국가로 존중해줄 것을 요구해왔고 사실 먹혀들어가고 있습니다.

미국 앞에서 알아서 기어주지 않으면 미국이 보복을 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래서 시청 앞 광장에서 성조기를 흔들어 주시는 거라면, 지금 말씀드리지요. 미국은 당신들이 납작하게 기든지 말든지 한국의 국익을 염두에 두는 일은 조금도 없으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미국의 대외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 한국인의 안녕과 행복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미국의 이익만이 미국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한국을 우방으로 두는 것이 유용하다고 판단되는 한 미국은 한국을 지지하겠지만, 한국이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 미국은 어떤 추악한 행동이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지도자층이나 일반 시민이나 이런 점에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위로가 되는 말씀을 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소주 한 잔 더 하세요.)

앞서 비유로 들었던 짝사랑하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짝사랑의 비유는 권력의 불균형이란 점에서 잘 들어맞습니다.) 일방적으로 구애를 받는 사람이, 자신을 짝사랑하는 사람이 납작하게 엎드리고 매달리고 빈다고 그 사람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요? 스스로 당당하게 서는 사람만이 존경을 받습니다. 국제관계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번 편지에서는 제국 시민의 의식과 대중매체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편지가 마지막이냐고 물어보신 분이 계셨는데 '제국 편지'는 앞으로도 죽 계속됩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알 수 없는 공포심, 누가 조장하나?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의 첫 편지를 읽어주시고 격려쪽지나 답글을 써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두 번째 편지에서는 제국으로서 미국이 초군국화(hypermilitarized)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후 아마도 가장 군국화한 제국일 것입니다. 미국의 군국주의는 어마어마한 양의 공격무기 비축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인의 일상생활과 문화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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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에서 띄우는 편지 ①] 위험한 '자뻑', 우월주의에 갇힌 미국인

교육·의료·주택·빈민보조금 예산의 3.7배나 되는 군비

미국 정부의 2007년 군비(국방비) 예산은 미화 6250억 달러에 달합니다. 한화로 하면 무려 590조원에 해당합니다. 1분에 무려 11억여원씩 계속 지출한다는 뜻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지금 이 기사를 읽으시는 동안만 해도(5분 안에 빨리 읽는다는 가정 아래) 미국 정부는 56억원 어치의 군비를 지출했습니다.

국가 경제를 위태롭게 할 정도로 지나치게 비대한 군대를 만들어 유지하는 것은 초군국화의 한 단면입니다. 제국 시민들의 일상생활은 이로 인해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우선 군대를 키우는 데 힘을 쏟다보니 정부의 여타 정책과 기능은 덜 중요해집니다. 군비로 1년에 6250억 달러를 들인 미국 정부는 같은 기간 동안 교육 분야에는 700억 달러, 여타 공공부문(예를 들어 의료, 주택, 빈민보조금 등)에는 980억 달러를 배정했습니다.

교육 현장만 봐도 교과서, 교사수당, 학교 건물 보수 등에 필요한 예산이 부족해 갈수록 공교육이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필요한 예산을 주로 지방자치정부가 거두는 재산세에서 충당합니다. 결국 부자 동네는 학교도 좋고, 가난한 동네는 여러모로 열악한 학교를 운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사는 클리블랜드에서는 매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절반 정도가 중학교 3학년 수준의 수학능력시험에서 낙제합니다. 클리블랜드의 학교 건물 중 20%는 노후한 정도가 워낙 심해서 보수가 불가능하며 철거해야 할 상태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스며드는 군사문화에 젖어든 미국인... 전쟁 코스프레도 인기

한편 제국의 시민들은 군국주의적인 시각으로 미국과 세계와 일상생활을 보도록 훈련되고 있습니다. 물론 군국주의적 시각을 견지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군대에 지원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중의 초군국화는 알게 모르게 군대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이 조금씩 몸에 배며 일상생활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입니다.

결국 군대적인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으로 느껴지며, 폭력과 흉악한 무기에 감각이 무디어지고, 군인과 영웅을 동일시하고, 군대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우리 학교 학생을 비롯한 민간인들이 전투복 바지나 상의를 입고 다니는 것이 이상할 게 없을 뿐 아니라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살인, 죽음, 부상 같은 실제 전투의 끔찍한 현실과는 완전히 단절된 하나의 패션이 되어 있습니다.

험비(Humvee)나 지프차를 타고 쇼핑하러 가는 사람들도 비슷하게 희한하지요. 이런 전투차량은 침략이나 공격무기가 아니라 "지대 멋있고", "민간에서 구입할 수 있는 차량 중 비포장도로에서 가장 기능적인" 차라고 광고에 나옵니다. 민간인인 당신도, 편리하게도 전투 현장에서 총 맞을 걱정도 없이 군인들처럼 엄청 남성미 넘치는 차를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험비는 원래 미 육군용 차량으로 개발되었지만 백인 남자들 사이에서 개인용 차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참고로 험비의 연비는 갤런당 11마일, 리터당 4.7킬로미터밖에 안 나온다고 합니다.)


▲ 험비.
ⓒ 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스포츠도 일상생활의 초군국화를 보여주는 한 면입니다. 스포츠 언어를 보면 군대용어가 많이 섞여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문 스포츠면이나 방송 해설을 보면, 축구든 농구든 스포츠 경기는 흔히 전투에 비유되며, 운동선수는 '전사'로 불리고, 어떤 팀이 다른 팀을 '제압'했다거나 '파괴'했다는 표현을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21일 보스턴 레드삭스 관련 블로그를 보니, "레드삭스가 탬파베이에 진격하다"라고 쓰여 있더군요. 막대한 월급을 받는 근육질 남자들이 기껏 몇 시간 동안 공 던지고 치는 운동경기를 처참한 파괴가 따르는 전투로 비유하는 스포츠면과 방송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군대와 폭력의 언어에 결국 무디어집니다.

의식의 군국화는 아주 어려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 집만 해도 저와 형들은 매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각기 장난감 총과 군인 인형, 탱크, 대포, 폭격기, 전투함 등을 꼭 한두 개씩 받았습니다. '서부개척시대'의 장총을 선물 받아 원주민을 쏘아 죽이는 흉내를 내며 놀기도 했고, 산탄총으로 미국의 적을 제압하는 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요즘도 물론 장난감 가게에 가면 아주 사실적으로 만든 장난감 무기들이 한가득 쌓여있습니다.

전쟁을 놀이로 생각하는 것은 어린이들뿐만이 아닙니다. 수십만 명의 미국인들이 상당한 돈과 시간을 들여 장비와 의상을 구입해서 역사적인 전투를 재연하는 일종의 전쟁 코스프레를 취미로 삼고 있습니다. 오하이오에서는 남북전쟁 재연이 특히 큰 인기입니다. 다음 달에도 어느 소도시에 수천 명이 모여 이틀에 걸쳐 전투를 재연한다고 합니다.

150년 전의 전투복을 본떠 만든 의상을 걸치고 군인처럼 행군하고 장총과 대포를 쏘아대는 이런 행사는 군대를 미화하고 취미활동이란 미명 아래 민간인을 군인화하는 효과를 냅니다.

초군국화한 문화에서 자란 미국 시민 중 일부는 군인이 되어 바그다드에, 팔루자에, 아부 그라이브에, 또는 서울의 미8군에 배치됩니다. 이들 중 일부가 현지인들의 죽음과 고통에 무감각한 이유는 어려서부터 장난감 무기와 컴퓨터 게임과 폭력적인 만화 등에 노출되면서 군대와 폭력이 정상적인 삶의 일부로 각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을 절대 선으로 보는 인종차별적인 사고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남북전쟁 재연 행사.
ⓒ 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공포는 미국 문화의 본질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미국이 이렇게 막대한 군비를 지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면 가장 흔히 나오는 대답이 "우리나라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 또는 "우방을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미국인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인의 대중 심리에서 공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만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인들이 항상 공포에 떨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는 건 미국인뿐입니다. 공포는 초군국화의 핑계이자 결과입니다.

학생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들은 부단히 경계하지 않으면 외국군이 미국을 침략할 것이라는, 심지어는 자기 동네와 집도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비이성적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 듯한 테러 목표물 비슷한 것도 없는 시골에 사는 학생들도 '테러리스트'들이 언제 자기네 동네를 공격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과 아주 가까운 영어권 우방이 아니면 외국에 나가는 것은 무조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 학생들을 데리고 중국에 수학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둘째 형이 하는 말이 "중국 정부가 너나 학생들을 잡아가면 어떡할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도 황당해서 "중국 정부가 뭣 땜에 날 잡아가겠어?"라고 물어보니 "글쎄, 네가 아는 게 많으니까 써먹으려고 하지 않을까?"라고 대답했습니다.

학생들을 한국의 여름학교에 보낼 때도 마찬가지로 걱정하는 부모들이 꼭 있습니다. 한국에 수돗물이 나오는지, 전기가 들어오는지, 너무 더럽지는 않은지, 풍토병은 없는지 물어보는가 하면, "한국은 안전한가요? 전쟁이 나면 어떡하죠? 북한군이 애들 납치해가지는 않겠죠?"라는 학부모도 있었습니다.

이럴 때는 어디서부터 답변을 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서울은 클리블랜드나 뉴욕이나 보스턴이나 시카고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하면 제 말을 믿지 못합니다.

공포 부추기는 지배층... 결과는 '약소국을 두려워하는 초강대국'

이런 공포의 만연은 우연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전쟁도발과 공격적인 대외정책에 대한 국민의 반대여론과 저항을 미국 정부에서 원천 봉쇄하는 데 공포만큼 좋은 도구는 없습니다. 공포를 느낄 때 미국 국민들은 역사적으로 예외 없이 자기네 정부를 적극 지지합니다.

단적인 증거로, 9·11 직전 부시의 지지율은 52%였는데 직후에는 88%로 치솟았습니다. 부시는 공포 유발을 지속적인 책략으로 써먹었는데, 적들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를 부추기는 연설을 자주 했습니다. 한번은 "오늘날 우리는 더욱 더 큰 위협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의 적은 자유를 미워할 뿐만 아니라 생명 그 자체를 미워하고 죽음을 숭배합니다"라고까지 주장했습니다.

즉 세계에는 미국인의 존재 자체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과는 이성적인 대화가 되지 않는다, 전쟁으로 이들을 박멸하는 것 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다는 뜻입니다.


▲ 국민 위험 정도 경고 차트.
ⓒ 미국 국토안전부 부시 정권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공포 유발 장치는 국민 위험 정도 경고 차트(national threat advisory)라는 색깔로 표시한 단계입니다.

미국인들의 공포는 거의 반사적인 반응으로서 이성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미국인들이 두려워하는 나라들은 대체로 약소국이라는 역설적인 사실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올해 초 실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 최대의 위협이 되는 나라"로 이란, 이라크, 북한이 꼽혔습니다.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켜야만 존속할 수 있는 군수산업, 석유산업을 비롯한 주요 산업과 유착되어 있는 미국의 정·재계 지배층은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한편으로는 군국화를 주도해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공포의 정서를 부추겨왔습니다.

다음 편지에서는 이 과정에서 교육과 미디어가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를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무식한' 이라크인은 국가 경영 못한다? - 그들이 침략행위에 관대한 이유

안녕하십니까.

앞으로 몇 편에 걸쳐 제국으로서 미국과 그 시민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언제인가부터 미국은 초강대국을 넘어 제국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사에서 아마도 가장 강력한 제국인 미국은 전 세계인의 생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한국만 봐도 미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십여 세기 동안 하나였던 나라가 분단되었고, 한국전쟁에서 끔찍한 살육과 파괴가 자행되었으며, 분단체제가 고착되어 남북의 수많은 한국인들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제국으로서 미국은 지배계급, 정치·경제·군사체제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민의 협력과 애국심을 필요로 합니다. 제가 쓰는 편지들에서는 거대구조가 아니라 제국 시민의 사고와 행동에서 논의를 시작하려 합니다. 보통 시민의 일상생활에서 제국이 운영되는 기제를 찾아보려는 것입니다.

'제국주의 미국'에서 눈 돌리는 미국 학생, 의아해하는 한국 학생

이번 여름 저는 한국의 한 대학에서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이란 과목을 강의했습니다. 제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도 비슷한 과목을 가르치지만 미국에서 하던 대로 강의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서 가르칠 때는 비슷한 교육을 받고 비슷한 대중매체를 읽고 보면서 살아왔기에 대체로 시각이 비슷한 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며, 따라서 미국인들에게 흔히 있는 잘못된 가정과 믿음을 해체하는 것이 교육 과정의 큰 부분입니다. 반면 한국 학생들에게는 미국인의 대중적 고정관념이 대략 어떠한가부터 가르쳐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한국 학생들이 미국과 미국의 대외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일어났던 다른 나라에 대한 수많은 군사적 개입(라틴아메리카에서만 190여 차례), 어마어마한 군비 지출액(전 세계 군비지출액의 42%),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미군기지(무려 130여 개 국가에 진출), 그리고 미국 내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예를 들어 최상위 1%가 90%의 국민이 보유한 재산의 총액보다 더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 등을 우선 짚어나갈 때, 두 나라 학생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습니다.

미국 학생들은 우선 이런 통계에 깜짝 놀라며 통계수치 자체를 의심하거나 어떻게든 미국 사회를 변호하려고 할 뿐, 미국이란 나라 자체의 모순을 직시하려 하지 않습니다. 반면 한국 학생들은 "왜 미국인들은 집회나 시위 등을 통해 위정자에게 항의하고 국내의 불평등과 대외정책의 문제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나요?"라든지 "왜 미국인들은 자기네 나라 정부가 남의 나라를 상대로 하는 행동에 그렇게 무관심하고 무지한가요?"라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저는 미국 사람들이 자국 국민들과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제국의 시민으로서 모순된 구조에 동참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 미국 대외정책 강의를 듣고 있는 한국 학생들.
ⓒ 데니스 하트

미국우월주의에 갇힌 사람들... 바탕은 '자뻑'과 착각

저와 우리 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미 제국의 시민들은 교육과 일상생활 환경과 대중매체를 통해 미국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끊임없이 주입받습니다. 그래서 대다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많은 미국인이 미국은 항상 근본적으로 옳고, 미국인은 타국인보다 우월하며 더 많이 축복받았고, 타국인이 좀 더 미국인처럼 될 수 있도록 가르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게다가 미 제국의 많은 시민들은 미국 내외의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모순되게도 자기네들이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선(善)을 행해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미국인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자기가 받은 축복을 나누어줄 대상을 선택할 의무와 권리와 능력이 있다고 믿는 자들은 오로지 미국인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런 오만함 때문에 선선히 미국화하기를 거부하는 나라에 가서는 양민을 폭격해서라도 미국화라는 선물을 안겨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미국인이 이렇게 똑같이 생각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믿음은 폭넓게 퍼져 있으며 미국 내에서 진행되는 국내외 정책에 대한 거의 모든 논의의 기본 바탕이 됩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미국우월주의 신념이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물고기가 물을 볼 수 없듯 이를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 달리 생각해볼 여지가 없습니다.

미국우월주의의 본질은, 어떤 기준에서 보든지 간에 미국보다 훌륭하거나 자유롭거나 살기 좋은 나라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전제에서 출발해 다른 모든 이론과 주장과 논리가 성립됩니다.

따라서 대개의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서 무언가를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뭘 하든, 뭘 믿든, 뭘 가지고 있든 간에 미국이 더 나은데 뭐 배울 게 있겠습니까? 미국 밖의 세계 모든 나라들은 못살고(또는 덜 잘살고) 열등하며, 우호적일지는 몰라도 항상 미국보다 뒤처져 있고, 미국을 부러워하며 미국을 따라잡으려고 안달이 나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지도자인 미국인에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처럼 잘살 수 있도록 '가르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미국의 우월성을 부정하거나 다른 문화나 사회도 미국과 다르지만 나름대로 훌륭하다고 설명할라치면,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오히려 그 외국인들이 국수주의적인 우물 안 개구리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 2003년 5월 1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 선상에서 이라크 전쟁의 임무 완료를 선언한 뒤 병사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미 국방부

이기면 옳은 것이라고 믿는 미국인... 상황 안 좋으면 피해자 이라크인 탓

몇 년 전, 강의 시간에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정당한지에 대해 토론을 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학생 하나는 "침공은 불법이고 옳지 못했지만, 이왕 개입했으니 이라크인들이 더 좋은 나라를 건설할 수 있도록 우리가 가르칠 의무가 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현재 이라크란 나라가 있는 지역에 주권국가가 오륙천 년 동안이나 존재해왔으니 어떻게 좋은 나라를 건설해야 할지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알지 않겠느냐고 제가 지적하자, 다른 학생 하나가 "그렇지만 이라크 사람들은 우리처럼 민주국가에서 살아본 역사가 없잖아요!"라고 대꾸했습니다.

또 다른 학생은 무식한 이라크인들은 어떻게 국가를 경영해야 할지 모를 뿐만 아니라 미국의 도움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이 부족한 같다고 얼른 끼어들었습니다. 수업을 하다 보면 가끔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난감한 순간이 있는데 이때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차근차근 반론을 하기에 앞서 정치 패러디 작가인 처크맨(Chuckman)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합성사진을 묘사해주었습니다. 반쯤 폭파된 건물을 향해 수많은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고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해골이 "미국 대통령님,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합성사진이었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특별히 모자라서가 아니고 제가 아는 많은 미국인들의 의견이 이와 비슷한 게 사실입니다. 최근에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전문가들이나 정치인들이 이라크의 "실패", 즉 이라크가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 데 대해 이라크인들을 비난하는 것이 유행입니다. 한술 더 떠서 이라크인에겐 자기 나라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다고 비판합니다.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논리지만 미국 대중에게는 먹혀들어갑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옳지 못하다"고 말했던 그 학생도 미국이 다른 주권국가를 침공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잘못됐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학생은 단지, 미국 정부가 옳지 못한 이유로 침공했다는 것과 미군이 이라크에서 승승장구하지 못하는 것이 실망스럽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이기지 못하는 것이 유감스러울 뿐, 미국이 걸핏하면 군사력을 동원해 공격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인디펜던트> 기자인 로버트 피스크(Robert Fisk)는 "다수의 미국인들에게는 전쟁이 윤리적으로 정당한지 여부는 문제가 안 되며, 그들은 미국이 이길 수만 있다면 이라크 침공이 옳은 결정이라고 여길 것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 정치 패러디 작가 처크맨(Chuckman)이 이라크 침공을 풍자한 합성사진. 반쯤 폭파된 건물을 향해 수많은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고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해골이 "미국 대통령님,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 처크맨

미국인에게 물어보세요, '이라크인 100만명 이상 사망'에 가책 느끼는지

지금도 대다수 미국인은 이라크에서 미군이 이기고만 있다면 이라크 침공의 불법성이나 이라크 국민의 극심한 고통, 자국 정부가 낭비하고 있는 엄청난 전비, 위험수위에 달한 미군 내 부패에 대해 아무런 반감도 품지 않고, 당연히 반대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인들이 반대하는 것은 남의 나라에 함부로 쳐들어갔다는 것도, 침공의 구실로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보를 위조했다는 것도, 미군이 점령지에서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도 아닌, 어떤 이유로든 미국이 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미국이 이라크에서 승전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부시 대통령이나 대외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다시 2003년 수준으로 치솟을 것이 틀림없습니다(이라크 침공 초기인 2003년 4월에 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당시 미국인의 74%가 침공은 "옳은 결정"이라고 했으며 61%가 "군사작전이 잘 수행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1, 2주일 전에 부시의 지시로 진행된 군사적인 대공세가 효력을 발휘하는 듯이 보이자 이라크전에 대한 지지율이 10%가량 올랐던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침공 초기와 달리 현재 미국민들은 대체로 현 대통령 부시를 지지하지 않으며 이라크전에 대한 지지율도 매우 낮은 상태지만, 이를 미국인들이 평화를 지지하게 되었으며 미국의 비윤리성을 참회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건 심각한 오해입니다. 미국인들은 미군 부상자와 전사자가 속출하고 있는 데 대해 화내고 있을 뿐입니다.


▲ 2003년 봄 우스터(Worcester, MA)시에서 열린 반전데모. 10~15명 정도가 1주일에 한 번 모이는 소규모 집회였지만 지속적으로 열렸다.
ⓒ 데니스 하트 아무 미국인에게나 물어보십시오. 1991년에서 2003년 사이에 유례없이 가혹했던 이라크 경제제재 때문에 사망한 5세 미만 영유아 50만 명에다가 미군의 이라크 침공 후 사망한 60만 명에 달하는 이라크인 희생자들, 현재 이라크인의 43%가 극심한 빈곤에 처해 있다는 사실, 대부분의 이라크 국민이 상수도 없이 살고 있으며 전기는 하루에 2~3시간만 공급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얼마나 양심의 괴로움을 느끼는지 말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대부분 이에 관심을 두기는커녕 이런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군 3~4천명이 죽어나간 것은 그들에게 큰일입니다. 중동 출신 학생 하나는 제게 "미국인들은 참 비겁해요, 자기네 군인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 미군 한두 명이 죽으면 난리가 나요"라고 하더군요.

얼마 전에 반전 시위를 조직하고 있던 제 동료교수 하나는 시위 참가자들이 각기 이라크전에서 전사한 미군의 이름을 적은 작은 십자가를 하나씩 가슴에 달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사망한 이라크인들의 이름이나 숫자도 적어서 함께 달든지, 아니면 전사한 미군의 이름 밑에다가 "이 미군 병사는 수십 명의 이라크인들을 죽이는 데 일조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써넣어야 공평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는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그 교수는 "당신이나 그러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반전시위에 참여한 미국인들은 비록 평균적인 미국인들보다는 조금 더 의식이 있는 편이었겠지만, 결국 그들의 분노와 정의감은 "우리 군인"들의 복지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입니다.

선량한 미국이 모자란 나라들에 퍼준다고? 오만한 고정관념

앞서 말했듯 대다수 미국인은 미국이 선의로 가득 차 있으며 강력하고 훌륭하며 지나칠 정도로 남들에게 '퍼준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미국은 다른 나라에 군사적인 개입을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옳은 이유에서이며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이기 때문에 하는 것뿐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하며 어리석은 태도에 갇혀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세계시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미국 정부의 제국주의적 침략 행동에 대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하고 불복종하며 들고 일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 함께 생각해볼 과제는 제국 시민들의 이러한 태도가 <오마이뉴스> 독자를 비롯한 한국 사람들에게는 왜 문제가 되고, 미국의 대중매체와 국가기구들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얽혀있으며, 어떤 수단과 방식으로 이들이 자국민의 정서를 자극하고 조종하며, 어떤 고정관념을 심어주고 끊임없이 재생산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쓸 편지들에서는 이런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해보겠습니다. 그럼 다음번을 기약하며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한국 전쟁은 전쟁이 아니라고? '위키피디아'의 삽질 지식 민주주의에 투쟁하다.

몇년 전에 저의 동양학 강의를 수강하던 학생들한테서 위키백과(위키피디아)를 요새 미국 대학생들이 참고문헌으로 많이 이용한다고 들었습니다.

"빠르고 쉽고 간단하거든요." 그 중 한명이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위키피디아란 게 뭔가 찾아봤습니다. "누구나 편집에 참여할 수 있는 공짜 백과 사전"이라고 스스로 내세우고 있더군요. 전문성도 교육정도 지능도 상관없이 누구나 편집할 수 있는 백과 사전이라니 얼마나 민주적인가요!

당시 한국 전쟁에 대해 연구하는 중이었기에 위키피디아의 한국전쟁에 관한 페이지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결과는 기막히는 것이었습니다.

위키피디아의 '한국전쟁'에는 한국인이 없었다

한국전쟁은 "민주 우방과 공산 세력사이의 대결"이었으며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분단을 '제안'하여 한국인들을 도왔다"고, "한반도를 무차별 폭격한 것은 오로지 한국인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또 "미군들이 아주 용감하게 공산당을 쳐부수었다"는 식의 아주 길고 장황한 '논문'이 실려있었습니다.

한편 용감한 미군들이 중공군·인민군, 심지어 소련군까지 무찌르는 무용담과 무기 매니아들의 무기류에 관한 아주 전문적인 토론(예를 들어 셔먼 탱크·P51 무스탕기·F-86 세이버 젯트기 등)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황당한 것은 미국의회가 전쟁을 선포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한국전쟁은 사실상 전쟁이 아니었으며 단지 '충돌' 또는 '치안' 사건이었을 뿐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마치 미국의회만이 유일한 판단의 주체인 듯 말입니다.(저런 저런, 그 비참한 난리통을 겪은 한국인들에게 "당신들은 전쟁을 겪은 적이 없으니 착각말라"고 알려줘야 겠네요.)

위키피디아의 '논문'을 읽는 동안 이런 모든 이상한 것들보다 더 이상한 점을 한 가지 발견했는데 그것은 한국전쟁 논의에서 한국인이 완전히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한국전쟁동안 한국사람들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거나 아무런 주요 역할도 하지 않은 듯 말입니다.

남북한의 군인들, 그리고 김일성과 이승만이 간혹 등장할 뿐이며 한국 사람들은 단순히 수백만명의 '사망자'라는 통계수치로만 존재합니다. 아주머니들, 어린이들, 아버지들, 농부들, 마을 사람들 같은 보통 한국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반면 미국인들은 매 문단마다 행위주체이며 영웅이며 구원자로 등장합니다.

대부분 미국인이거나 유럽인인 위키피디아의 '편집자'들은 한국전쟁에 관한 글에 한국인은 포함시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한국전쟁은 첫째도 둘째도 모두 미국 군인들과 미국군의 막강한 역량, 그리고 미국의 대외정책을 논의할 하나의 제목일 뿐입니다. 한국인들이 누구보다도 많은 희생을 겪었고 누구보다도 많은 전사자를 낸 전쟁을 보는 시각치고는 참 이상한 시각이지요.

몇 주간의 첫 '전투'... 고치고 지우고 더하고


▲ 위키피디아 한국전쟁 페이지.
그러나 미국에서 오랜 세월을 산 저는, 바로 그 시각이 대부분의 미국인이 한국과 한국전쟁을 보는 시각이며 세계를 보는 시각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미국의 이해관계와 관련해서만 다른 나라에 관심을 둘 뿐입니다. 대부분의 위키피디아 '편집자'들이 이런 가정 하에서 글쓰기를 시작하기에 위키피디아 논문들은 아마추어 미국인 역사가들의 '삽질'이나, 정서적으로 미숙한 국수주의적 애국자들의 '탁월한 성능을 가진' 미제 살상무기에 대한 논의, 공산주의자들의 '잔학함'에 대한 과장된 이야기들, 그리고 운좋게도 미국의 폭격을 받아 해방된(?) 한국인을 비하하는 시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학교 학생을 비롯하여 미국 전역의 고등학생·대학생들이 한국전쟁에 대해 배우는 것이 고작 이런 뒤틀린 시각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나쁜건 이를 토대로 영어권 대학생들이 리포트나 기말논문을 써대고 있을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위키편집자들의 편협함과 옹졸함, 외국인 혐오증과 무지함과 싸우고자 위키피디아 편집에 뛰어들었습니다.

막상 편집을 시작하자 위키피디아란 곳이 사람들의 편협하고 잘못된 시각을 널리 전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기와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쳐빠지게 만드는 것도 가능한 곳이란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우선 저는 백여군데가 넘는 곳에 수정을 가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수탈에 대한 언급이 전무했기에 이에 대한 설명을 가했고, 미국의 지지를 업고 이승만 정권이 1940년대말 자국민 만여명에 대한 민간인 대량학살을 자행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연했습니다.

또한 북한의 침공은 냉전중이었던 당시 스탈린과 공산주의자들의 조종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한반도 내의 상황과 통일문제에 더 큰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첨가했고, 한국전쟁당시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써넣었습니다.

몇주간이나 시간을 들여 틀린 부분은 고치거나 지우고 실례가 모자란 곳은 더하고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챙겨넣으면서 중요한 공헌을 한 듯한 마음에 뿌듯했습니다.

일차적으로 이 작업이 끝난 후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다가 몇주후 같은 웹사이트를 다시 찾아가보았습니다. 남들이 나의 훌륭한 공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자는 심사였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렇게 시간을 들여 백여군데 고쳐놓은 게 거의 대부분 원상복구가 되어있었고, 미국은 무조건 옳고 북한은 무조건 사악하며 남한은 미국이 구해줘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존재로 돌이켜져 있었습니다. 거기다 "미제 대량살상무기 너무 멋지죠" 따위의 삽질성 엔트리도 거의 복구되었고요.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린 나의 '편집투쟁'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어요. 다시 돌아가 처음 제가 고쳤던 부분을 다시 되살리고, 내용을 더하고, 참고문헌도 더 소상하게 밝히고, 다른 '편집자'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상세히 논리적인 설명까지 덧붙였습니다.

정말 우스꽝스러웠던 것은 제가 해당 논문에 '왜곡된 시각'을 첨가하고 있다는 항의와 비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주관적인 시각, 'POV'라고 줄여부르는 point of view는 위키피디아에서 크나큰 죄로 여겨집니다.)

위키피디아의 한국전쟁 논문에 대문사진으로 실려있던 것이 미해병대가 인천에 상륙하는 장면이었는데 제가 "한국전쟁을 대표하는 사진으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하자 다른 편집자 한 명으로부터 "잘났소, 이미 지나간 역사를 공평하게 만들려고 하다니 당신 참 어리석구랴, 역사적 사실은 사실로 받아들이쇼"라는 감정적인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오마이뉴스>에 보낼 이 기사를 쓰면서 같은 사이트를 다시 가봤더니 그 사진은 그대로 걸려있고 "미해병대가 격렬한 전투를 벌이며 인천에 상륙하고 있다"는 사진제목이 써있었습니다.

저는 제목을 "미해병대 인천 상륙장면, 당시 적군의 저항을 거의받지 않았음"이라고 고쳤습니다. (당시 인천에 있던 북한군의 숫자는 수백명이 채 안됐고 상륙전 주민들이 대부분 잠들어 있던 시간에 융단폭격을 했기 때문에 상륙당시 거센 저항이 있었을 리가 없으나, 미국인들은 인천상륙작전이 마치 대단히 용감하고 지능적으로 놀라운 작전이었던 양 묘사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한 시간도 못되어 사진설명은 누군가가 "미해병대 인천에 상륙하다"라고 다시 바꾸어 놓았습니다.

위키피디아에 글쓰는 사람이 전부 저에게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하는 사람의 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두번째로 크게 수정을 보자 한동안 그대로 있는가 했더니 한두달 후에는 결국 제가 손보기 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일부 제가 쓴 부분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 페이지를 자주 가지 않았던 동안 야금야금 지워져 거의 형체를 알아볼수 없게 되었더군요.

북한군은 조금씩 조금씩 '공산주의자'로 바뀌었고, 노근리는 더이상 '민간인 학살'이 아니고 사실여부도 확실치 않은 돌발 '사건'인 것으로 되었으며, "한국인들이 총에 맞거나 폭사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 있는 것으로 되었습니다.(공격의 주체를 확실히 표시하여 미군들이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들을 '학살'했다고 쓰면 일반적으로 '왜곡된 시각'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지금도 때로 강박적인 제 성미를 못이겨 그 한국전쟁 논문이 있는 페이지를 가봅니다. 제가 쓴 문장은 항상 조금씩 조금씩 미국중심적이고 미국을 변호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있고 행동주체로서의 한국인들의 이야기는 지워져있습니다.

'지식의 민주주의'는 항상 좋기만 할까


▲ 위키피디아의 첫 화면.
요즘은 저는 학생들에게 위키피디아식의 지식형성과 미디어의 한계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함께 협동하여' 지식을 창출하는 것이 가치롭다고 주장하지만, 저는 위키피디아는 사실 지식의 민주주의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의 민주주의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도 말할 권리가 있다'라는 뜻이라면 말이죠.

저는 학생들에게 자기 의견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너희들과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너희가 옳다는 뜻도 아니다라고 합니다.

바보들이 모여서 말도 안되는 얘기를 떠들어대고 있을 때 다른 바보들의 의견을 또 더한다고 해서 그들의 의견의 질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지능지수(IQ) 70짜리 둘이 모여서 IQ 140이 되듯이 합해지는 것이 아니지 않냐라고 합니다. 비판적인 사고와 진지한 배움이 없으면 너희들의 의견도 '위키바보'들의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못박습니다.

정치학자 글렌 틴더는 "사람들에게 마치 그들이 생각하는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사람은 사랑을 받지만 사람들을 실제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미움을 받게 마련이다"라고 했습니다. 틴더 박사도 위키피디아의 논문들을 편집하는 데 수많은 시간을 들인 것이 틀림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시지푸스의 돌을 굴려올리는 모습을 보시고 싶은 분은 위키피디아로 가서 제가 말씀드린 논문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저의 위키이름은 'hongkyongnae'입니다.

덧붙이는 글 | 데니스 하트 기자는 미국인으로, 미 오하이오주 켄트주립대학교 정치학 교수이며 오마이뉴스 해외통신원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왜 북한을 미워할까요? (미국 교사들에게 북한에 대해 가르치기)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현직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의 화약고(Global Hot Spots) 강연 시리즈(http://oia.osu.edu/hotspots/index.html) 에서 북한편을 맡아보겠느냐는 제의가 왔을때 저는 선뜻 수락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미국 대중매체의 편파적이고 왜곡된 시각 때문에,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일반 미국인들이 심한 적대심과 증오를 보이는 것이 여기 현실이기에 북한에 대한 강연이라면 거의 아무 곳이나 갈 용의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대상이 현직교사들이라니 안 나설 수가 없었어요. 강연에 오신 분들은 30~40명이었지만 이분들이 각기 현장에서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칠 것이니까요. 강연시리즈를 기획하신 분의 말씀에 의하면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늦은 시간에 3시간이나 공부를 하러 오시는 분들이기에 대개 의욕이 많고 일반인에 비해 사전지식이 많은 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100여 장이 넘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준비를 하면서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굳어진 편견과 정서적인 반응을 넘어서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이르게 할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나오는 거부반응을 해체할 수 있을까하고요.


▲ 강의중인 필자의 모습.
ⓒ Dennis Hart
강연을 시작하면서 청중에게 첫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싫어해야 마땅한 이유를 10가지만 들어보세요."

질문을 마치기가 무섭게 봇물처럼 적대적인 언사들이 튀어 나왔습니다.
"핵무기 때문이죠."
"김정일."
"논리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죠."
"베트남."
"수만명이 굶어죽었다면서요."
"인권의 사각지대."
"군비지출이 엄청난 나라."
"폐쇄된 나라."
"협조할줄 모르는 나라."
"위협적인 존재."
"우리나라와 전쟁을 한적이 있잖아요."
"60, 70년대에도 우리를 못살게 굴었죠. 다시는 우리한테 위협이 안되도록 아예 밟아버려야 합니다" 등등.

10가지를 훨씬 넘기도록 끝이나지 않아서 알았습니다하고 그정도에서 끊었습니다.

"그럼 북한에 대해 칭찬할 만한 것, 존경할 만한 점은 어떤게 있나요"하고 두번째 질문을 했습니다. 강의실이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겨우 쥐어짜듯, 못마땅한듯 주저하며, "북한 사람들 운동은 잘하죠." "태권도." "애들은 예쁘데요"라고 10가지의 반도 못 채운 답이 나왔습니다.

저는 한국역사를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본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고구려와 발해의 광활한 영토를 보여주고, 고려청자와 거북선과 한글과 금속활자와 측우기 등등 한국역사의 장엄하고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면면들과 한국사람들의 뛰어난 과학적, 천문학적, 지리학적 성취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어느새 청중은 그 적대적인 태도를 버리고 몰입하고 있었습니다.

긴 역사동안 여러번 큰 전쟁을 치루며, 때로는 자발적인 의병까지 조직되어 외적을 물리치고 나라와 주권을 지켜온 과정을 설명하고나니 대부분 교사들은 벌써 북한 사람들이 왜 '주체'라는 독특한 사상을 만들어냈는지 이해했습니다.

일제하의 한국인들이 겪은 끔찍한 고통을 얘기했을때는 탄식이 흘러나왔고, 한국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진을 보여주었을때는 숙연해졌습니다. 미군의 무차별 융단 폭격, 핵공격 위협, 네이팜공격, 민간인 학살, 이 모든 것이 우리같은 미국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사실'이지만 한국인들은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음으로 분단의 과정과 분단 전후의 역사에 대한 미국의 책임, 북한의 성공적인 무혈 토지개혁, 식량난 이전까지의 북한의 경제적 성공에 대해 강의하자 그분들이 들었던 "북한을 싫어하는 이유들"이 모두 옳지않음이 분명해졌습니다.

한 예로 북한의 군비는 미국의 군비의(그것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전쟁비용, 핵무기개발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뺀 액수) 1.3%라는 사실을 제시했더니 북한을 전쟁준비에 미친 나라라거나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가 너무 분명해졌지요.

또 미국은 9천여점의 핵탄두와 핵폭탄을 갖고 있는데 기껏해야 5-6개도 안되는(그것도 확실하지도 않은) 북한의 핵을 왜 두려워해야 하는지, 뻔한 질문인데도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이들 중 아무도 1994년의 북미협약과 최근의 협약이 거의 같은 내용이란것, 1994년 협정을 먼저 어긴 것은 미국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 강연을 듣고 있는 현직 교사들.
ⓒ Dennis Hart
강의를 마칠 시간이 이미 15분이나 지났기에 개성공단과 통일 열차, 남북한 단일 스포츠팀, 서로를 응원하는 남북한 사람들, 금강산 기행중 아기를 낳은 한국 아줌마와 북한 의사들의 사진을 주마간산으로 보여주고 마쳤는데,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핵문제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좀 더 얘기해달라고 주문이 들어와 결국 30분 이상 늦어져서 끝냈습니다.

"새로운 안목이 열렸어요" "제가 얼마나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지 이제야 알았어요." "김정일이 위험한 미치광이인줄 알았더랬어요." "북한사람들은 자기나라를 지키고 생존하고 싶어할 뿐인거죠." "너무 재미있었어요. 전혀 뜻밖이었고요"라고들 하셨습니다.

저로서는 정말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힘든 강의였지만 큰 보람을 느낀 하루였답니다. 조금이나마 세상의 증오를 줄이고 자비심과 이해를 증가시켰다는 생각에 아주 행복했습니다.

By Dennis hart ⓒ 2007 OhmyNews

it's been 6 months

It's has been six months since I posted last time.

most painful time in my life.

it's time to move on and I believe i can.

I opened this blog for practicing writing in english, but I don't really

know which language I put my though on here in.

I don't think it's really matter because nobody would visit here

since this place was abandoned for long time.

I need the place to throw my feelings and thoughts in,

in Korean as well as English.